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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ber est quisque fortunae suae" - Appius Claudius Cae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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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년 십자군 1101년 십자군은 제1차 십자군의 성공적인 여파로 1100년과 1101년에 조직된 세 개의 개별 소규모 십자군이었다. 서약을 했지만 제1차 십자군이 끝난 뒤, 이 십자군에 참가한 참가자 수가 많아 '심약한 십자군'이라고도 불린다. 새로 수립된 예루살렘 왕국의 증원 요청과 교황 우르바누스 2세(그가 모집한 십자군의 결과를 알기 전에 사망함)의 후계자인 교황 파스칼 2세가 새로운 원정을 촉구했다. 그는 특히 십자군 서약을 했지만 떠나지 않은 사람들과 행군 중에 되돌아온 사람들을 재촉했다. 이 사람들 중 일부는 이미 집에서 경멸을 받았고 동쪽으로 돌아가라는 엄청난 압력에 직면했다. 1098년 안티오키아 공방전에서 도망친 블루아 백작 스테판의 아내 블루아의 아델라는 남편이 너무 부끄러워서 남편이 집에 있는 것.. 2021. 3. 27.
제1차 십자군 - 5편(예루살렘 왕국/Kingdom of Jerusalem) 1098년 6월 안티오키아 공방전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십자군은 그해 남은 기간 동안 그 지역에 머물렀다. 교황의 특사 아데마르 주교가 사망했고, 타란토의 보에몽은 안티오키아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불로뉴의 보두앵은 1098년 초에 점령한 에데사에 남아있었다. 귀족들 사이에서는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의견이 엇갈렸다. 툴루즈의 레몽은 좌절하여 안티오키아를 떠나 마라트 요새를 점령했다. 연말이 되자 하급 기사와 보병들은 귀족들 없이 예루살렘으로 진군하겠다고 위협했다. 12월 말 또는 1월 초에 노르망디의 로베르와 보에몽의 조카 탕크레드는 레몽의 가신이 되기로 동의했는데, 레몽은 그들의 봉사에 대해 보상해줄 만큼 부유했다. 그러나 에데사에 있는 그의 동생의 영토에서 수익을 얻은 고드프루아 드 부용은 그.. 2021. 3. 26.
제1차 십자군 - 4편(안티오키아 공방전/Siege of Antioch) 도릴라이움 전투 이후 아나톨리아를 통과하는 십자군의 진군에 저항이 없었지만 아르슬란의 군대가 남겨진 모든 것을 불태워 없앴기 때문에 여정은 불쾌했다. 한여름이었고 십자군은 식량과 물이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과 말이 죽었다. 현지의 기독교 인들은 때때로 그들에게 음식과 돈을 선물로 주었지만, 십자군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단순히 빼앗고 약탈했다. 아데마르 주교는 영적 지도자로 인정받았으며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스스로 지휘권을 장악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전체를 이끄는 것에 대한 논쟁을 계속했다. 킬리키아 관문을 통과한 후, 보두앵은 유프라테스 주변의 아르메니아 땅을 향해 출발했다. 유럽에 있는 영지와 재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그의 아내가 전투 후에 죽었기에 보두앵은 유럽으로 돌아갈 동.. 2021. 3. 25.
제1차 십자군 - 3편(귀족 십자군/Princes' crusade) 제1차 십자군 지도. 각 종교와 교파의 범위가 지도에 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위에서부터 카톨릭, 동방 정교회, 바오로파, 그리스도 단성론, 이슬람 수니파, 시아파, Judaisme :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한 곳. 자주색 경로 : 베르망두아의 위그, 녹색 경로 : 고드프루아 드 부용, 보라색 경로 : 타란토의 보에몽, 노란색 경로 : 툴루즈의 레몽, 청록색 경로 : 노르망디의 로베르, 오렌지색 : 이그나티아 가도, 빨간색 경로 : 집결한 십자군, 빨간색 점선 : 에데사로 진격한 불로뉴의 보두앵 귀족 십자군 네 개의 주요 십자군 군대는 1096년 8월 경 예정된 시간에 유럽을 출발했다. 그들은 콘스탄티노플로 다른 길을 택하여 1096년 11월과 1097년 4월 사이에 성벽 바깥에 모였다. 베르망두아 백작 위.. 2021. 3. 24.
제1차 십자군 - 2편(민중 십자군/People's Crusade) 클레르몽 공의회 비잔틴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는 만지케르트 전투의 여파로 니케아까지 도달한 셀주크의 서진을 우려하며 1095년 3월 피아첸차 공의회에 사절을 보내 투르크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우르바누스는 아마도 40년 전의 대 분열을 치유하고 필요할 때 동방 교회를 도우면서 교황 주권 아래에서 교회를 재결합하기를 희망하면서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알렉시오스와 우르바누스는 이전에 1089년과 그 이후에 긴밀한 연락을 취했으며 기독교 교회의 (재)결합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했다.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기 전 몇 년 동안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사이에 상당한 협력의 징후가 있었다. 1095년 7월 우르바누스는 원정대를 모집하기 위해 고향인 프랑스로 향했다. 그의 여행.. 2021. 3. 23.
제1차 십자군 - 1편 제1차 십자군 전쟁(1096-1099)은 중세 시대에 라틴교회가 시작하고 지원하며 때때로 지시한 일련의 종교 전쟁 중 첫 번째 사건이었다. 초창기 목표는 이슬람 지배로부터 성지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 캠페인들은 이후 십자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제1차 십자군 원정은 1095년 비잔틴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가 비잔틴 제국의 셀주크 터키와의 충돌에서 피아첸차 공의회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는 그해 후반에 클레르몽 공의회로 이어졌는데,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비잔틴의 군사 지원 요청을 지지했고, 또한 신실한 기독교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무장 순례할 것을 촉구했다. 이 전화는 서유럽의 모든 사회 계층에서 열광적인 대중적 반응을 얻었다. 프랑스 신부인 은둔자 피에르가 이끄는 수천 명에 .. 2021. 3. 21.
역사 지도(History Map)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때는 BC 4천 년경 나타난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으로 보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만큼 많은 나라들이 흥망성쇠를 해왔다. 아래는 주요 국가들의 역사 지도를 보여준다. (* 지도 GIF가 제대로 재생되지 않으면 지도를 클릭해서 보세요.) 1.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 (BC 550-330) 키루스 대왕이 세운 페르시아 제국은 관용과 다문화를 수용한 최초의 초강대국이자 대제국이었다. 2. 마케도니아 제국 (BC 330-323) 마케도니아가 낳은 영웅인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더 대왕)는 그리스의 숙적이었던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인도까지 원정하는 동안 패배를 모르는 군사 천재였다. 그가 죽은 후 제국은 분열되었지만 그리스 문화가 전파되어 헬레니즘이 꽃피우게 되었다. 3. 로마 .. 2021. 3. 20.
펠루시움 전투(Battle of Pelusium, BC 525) 펠루시움 전투는 아케메네스 제국과 이집트 사이의 첫 번째 주요 전투였다. 이 결정적인 전투는 파라오의 왕좌를 페르시아의 캄비세스 2세에게로 옮겨 이집트의 아케메네스 제27왕조의 시작을 알렸다. BC 525년, 현재의 포트사이드에서 남동쪽으로 30km 떨어진 이집트 나일 삼각주의 동쪽 극단에 있는 중요한 도시인 펠루시움 근처에서 싸웠다. 전투는 멤피스의 포위 공격으로 이어졌다. 배경 헤로도토스의 동기와 배경에 대한 설명 펠루시움 전투로 이어지는 사건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설명은 그리스 역사가들, 특히 헤로도토스의 이야기이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집트의 파라오 아마시스 2세와 페르시아의 캄비세스 2세 사이의 갈등은 대부분 이집트인과 같은 여러 개인들을 포함하는 점진적인 과정이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캄비.. 2021. 3. 19.
오피스 전투(Battle of Opis) BC 539년 9월에 벌어진 오피스 전투는 메소포타미아를 침공한 키루스 대왕의 페르시아 군과 나보니두스의 신 바빌로니아 제국 간의 주요 교전이었다. 당시 바빌로니아는 아직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지 않은 서아시아의 마지막 강대국이었다. 전투는 수도 바빌론 북쪽에 있는 전략적인 도시 오피스 또는 그 근처에서 벌어졌다. 전투는 페르시아 인들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며칠 후, 시파르는 페르시아에 항복했고 키루스의 군대는 저항 없이 바빌론에 들어갔다. 이후 키루스는 바빌로니아와 그 영토의 왕으로 선포되어 바빌론의 독립을 종식시키고 바빌로니아 제국을 페르시아 대제국에 통합시켰다. 위치 전투 장소는 현재의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약 80 ㎞ 떨어진 티그리스 강가에 있는 오피스였다. 이 도시는 강을 건너는 데.. 2021. 3. 17.
알라리아 해전(Battle of Alalia) 알라리아 해전은 BC 540년에서 535년 사이에 코르시카 부근의 티레니아 해에서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카르타고 동맹 간에 발생했다. 60척의 포카이아 선박으로 구성된 그리스 함대가 120척의 포에니 에트루리아 함대를 격파하면서 그리스인은 지중해 서부와 인근 알라리아 식민지(현재의 알레리아)로 이주했다. 배경 페니키아인은 BC 9세기와 8세기에 아프리카, 시칠리아, 사르데냐, 이베리아에 교역소를 세웠으며 독점 무역을 창출했다. 페니키아인은 지중해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경제가 쇠퇴한 후 처음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광범위한 규모로 지중해 주변에서 무역을 시작한 최초의 민족 중 하나였다. 에트루리아인은 BC 8세기에 지역의 주도 세력으로 부상하여 코르시카, 사르데냐, 이베리아로 무역을 확산시키고 그들의 이익을 .. 2021. 3. 15.
팀브라 전투(Battle of Thymbra) 팀브라 전투는 리디아 왕국의 크로이소스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대왕 간의 전쟁에서 벌어진 결정적인 전투였다. 카파도키아에서 벌어진 프테리아 전투가 끝난 후 크로이소스를 쫓아 리디아로 간 키루스는 BC 547년 12월 사르디스 북쪽 평야에서 부분적으로 완전하지 않지만 크로이소스의 많은 병력과 만났다. 크로이소스는 많은 병사를 보충하여 키루스의 군대보다 약 두 배 정도 많았지만 완전히 패배했다. 이 전투로 전세는 결정되었으며 14일간의 사르디스 공성전 이후 도시는 함락되었고 리디아는 페르시아에 정복되었다. 상황 키루스는 BC 550년에 메디아 왕국을 정복하여 이웃 왕국인 리디아와 갈등을 일으켰다. 크로이소스는 증가하는 페르시아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힘의 균형을 원하는 바빌로니아, 이집트와 동맹을.. 2021. 3. 14.
고대 오리엔트 변천사 지도 (BC 200-AD 600) 고대 오리엔트에는 수많은 제국들이 흥망성쇠를 반복하였다. 아래 지도들을 통해 고대 오리엔트 제국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 BC 200년경 주요 세력 · 메소포타미아, 이란 서부, 레반트, 아나톨리아 중남부 - 셀레우코스 제국 (보라색) · 이집트, 레반트 남부, 키프로스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노란색) · 이란 동부 - 파르티아 왕국 (오렌지색) · 마케도니아 - 안티고노스 왕조 (녹색) 지역 세력 · 이란 북서부 - 메디아 아트로파티니 (진녹색) · 아르메니아 - 아르메니아 왕국 (녹색) · 레반트 남부, 아라비아 북부 - 나바테아 왕국 (고동색) · 아라비아 홍해 연안 - 마인 왕국 (고동색) · 누비아 - 쿠시 메로에 왕조 (고동색) · 아나톨리아 흑해 연안 - 폰토스 (파란색) · 아나톨리아 북.. 2021. 3. 13.
고대 오리엔트 변천사 지도 (BC 1400-300) 고대 오리엔트에는 수많은 제국들이 흥망성쇠를 반복하였다. 아래 지도들을 통해 고대 오리엔트 제국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 BC 1400년경 주요 세력 ·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북부 - 미탄니 제국 (녹색), 주변의 녹색 글자는 미탄니의 속국을 나타낸다 · 아나톨리아 - 히타이트 왕국 (자홍색), 주변의 자홍색 글자는 히타이트의 속국을 나타낸다 · 이집트 - 신왕국 제18왕조 (노란색) 지역 세력 · 메소포타미아 중남부 - 바빌로니아 카시트 왕국 (보라색) · 고대 이란 - 엘람 키디누이덴(Kidinuiden) 왕조 (오렌지색) · 페르시아 만 - 딜문 왕국 (보라색) · 아나톨리아 서부 - 아르자와 (고동색) · 키프로스 - 알라시야 왕국 (회색) · 그리스 - 미케네 문명 (청록색) BC 1300년경 주.. 2021. 3. 11.
고대 오리엔트 변천사 지도 (BC 2600-1500) 고대 오리엔트에는 수많은 제국들이 흥망성쇠를 반복하였다. 아래 지도들을 통해 고대 오리엔트 제국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 BC 2600년경 주요 세력 · 메소포타미아 - 수메르 도시국가 (보라색) · 이집트 - 고왕국 제4왕조 (노란색) · 크레타 - 미노아 문명 (빨간색) 지역 세력 또는 유목민족 · 고대 이란 - 엘람 (오렌지색) · 티그리스 강 상류 - 니네베 5 문화 (검은색) · 트랜스코카서스 지역 - Kura-Araxes 문화 (회색) · 그리스 - 초기 헬라딕 시대 · 에게 해 - 키클라데스 문화 BC 2500년경 주요 세력 · 메소포타미아 - 수메르 도시국가 (보라색) · 이집트 - 고왕국 제4왕조 (노란색) · 크레타 - 미노아 문명 (빨간색) 지역 세력 또는 유목민족 · 고대 이란 - .. 2021. 3. 10.
므두셀라 므두셀라("창을 던지는 자" 또는 "검의 죽음")는 성경에 나오는 족장이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인물이다. 969세에 세상을 떠난 그는 성경에 언급된 인물 중 가장 오래 살았다. 창세기에 따르면 므두셀라는 에녹의 아들이자 라멕의 아버지이며 노아의 할아버지였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 므두셀라는 역대 상과 누가복음의 족보에 언급되어 있다. 그의 생애는 성경 외의 에녹서, 슬라브어 에녹과 같은 종교 문헌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성경 주석가들은 왜 창세기에 그가 그렇게 노년에 죽었다고 묘사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설명을 해왔다. 어떤 사람들은 므두셀라의 나이가 오역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의 나이를 창세기의 일부가 아주 먼 과거에 일어났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여긴다. 므두셀.. 2021. 3. 9.
에녹 에녹은 노아 홍수 이전의 성서 인물이자 야렛의 아들이자 므두셀라의 아버지이다. 에녹과 가인의 아들 에녹은 동명이인이다(창 4:17, 5:18). 창세기의 본문은 에녹이 하나님이 데려가기 전 365년을 살았다고 말한다. 본문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1-24)라고 쓰여 있는데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는 에녹이 살아서 천국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한다. 에녹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많이 다루어진다. 그는 에녹서의 저자로 여겨졌고 또한 에녹을 심판의 서기로 불렀다. 신약에는 셋의 혈통으로 난 에녹에 대한 세 가지 언급이 있다(눅 3:37, 히 11:5, 유 1:14-15). 창세기의 에녹 에녹은 모세오경의 창세기에서 홍수 심판 이전 아담의 6대손으로 .. 2021. 3. 8.
킴메르 킴메르인은 BC 1,000년경에 출현한 인도 유럽 유목 민족으로 BC 8세기 후반에 아시리아 기록에서 언급되었다. 킴메르인은 종종 문화적으로 "스키타이인"으로 동시대 사람들에 의해 묘사되었지만 그들은 킴메르인을 쫓아내고 대신 자리 잡은 스키타이인과 인종적으로 분명히 달랐다. 아마도 폰토스 카스피 대초원에서 시작된 킴메르인은 코카서스 북쪽을 경유하여 서쪽의 유럽과 남쪽으로 이주했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아마도 BC 714년 경에 신 아시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는 우라르투 지역을 침공했다. 남쪽으로 이주한 킴메르인의 침공은 705년 사르곤 2세의 아시리아 군대에 패배했으며 그 후 서쪽의 아나톨리아를 향했고 696/5에 프리기아를 정복했다. 그들은 리디아의 수도 사르디스를 점령한 652년에 세력이 정점에 도.. 2021. 3. 7.
니네베/니느웨 니네베는 메소포타미아 상부의 고대 아시리아 도시로, 오늘날 이라크 북부의 모술 외곽에 위치해 있다. 티그리스 강의 동쪽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신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이자 수십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오늘날 티그리스 강 동쪽 기슭의 모술 절반을 지칭하는 흔한 이름이며 이 지방의 니네베 주는 그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BC 612년까지 약 5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으며 아시리아에서 치열한 내전이 있은 후 바빌로니아인, 메디아인, 페르시아인, 스키타이족, 킴메리아족을 포함한 이전에 지배하던 민족 연합에게 약탈당했다. 이 도시는 다시는 정치나 행정의 중심지가 되지 않았지만 고대 말기에는 기독교 주교가 있던 곳이었다. 중세 시대에는 모술에 비해 쇠퇴했고 13세기에는 대부분.. 2021.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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